영원한사랑

19일 사람들을 경악케 한 '14세 소녀 살해 사건'은 자칫 단순 변사로 처리될 수도 있었지만 한 수사관의 동물적 감각과 집념으로 범죄의 전모가 드러났다.

20일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형사3팀 김군태 경사가 "여학생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다"는 내용의 변사 신고를 받은 것은 지난 1일 밤 9시45분께.

신고 접수 즉시 사건 현장인 성동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로 간 김 경사는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모(14)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간대로 봐서는 그리 깊은 밤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목격자가 없었을 뿐더러, 현장에는 타살로 단정할 수 있을 만한 단서도 없는 상태였다. 정황상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은 장양이 건물에서 추락해 숨졌다는 것뿐이었다.

김 경사는 "부검 결과 장양의 직접적 사인이 '두부손상에 의한 과다출혈'로 결론나면서 자살이라는 심증이 없지 않았다"며 "특히 추락사는 80% 이상이 자살이라는 점이 사건발생 초기 이런 심증에 무게를 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경사는 타살 혐의도 염두에 뒀다. 장양이 추락한 곳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2층 옥상놀이터에서 발견된 부러진 빗자루와 위생 장갑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김 경사는 변사 발생 일주일 뒤인 지난 8일 장양의 신원을 확인하고서 이를 토대로 주변 친구들에 대한 집중 탐문에 들어갔고, 결국 장양이 사망하기 약 3시간 전 사건 현장에서 우모(15)양, 주모(13)양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파악했다.

검거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 5월 위탁감호시설에서 이탈한 이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남의 눈을 피해 생활해 온 전력이 있는 만큼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나는 데도 능숙했다.

통신수사를 통해 이들이 서울의 한 PC방에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현장에 들이닥쳤지만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그러나 통신수사와 탐문수사, 잠복근무를 병행한 경찰의 집념 앞에 이들의 도주극은 열흘을 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김 경사는 "희미한 단서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범죄와 연관시켜보는 게 범행 현장에서 경찰관이 지켜야 할 수사 원칙이 아닌가 싶다"며 "이번 사건 해결로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의 한을 풀어줄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