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항소심, 원심 뒤집어

업무에 지친 중년 남성이 부인과 술을 마시고서 성관계를 한 후 뇌출혈을 일으켰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유승정)는 A(48)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는 A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회사 사정으로 팀원 3명이 빠진 상태에서 일을 계속했고, 퇴근시간은 규정상 오후 5시30분이지만 연장근무가 다반사였고, 주말근무도 잦았다.

사실상 주 6일,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의 연속이었던 A씨는 퇴근 후 아내와 맥주 1,500cc를 나눠 마신 뒤 성관계가 끝나자 돌연 심한 두통이 발생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을 청구했다. 하지만 '음주'와 '성행위'가 문제가 됐다. 두 행위 모두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뇌출혈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 공단은 이를 근거로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는 소송을 냈다.

원심은 "음주는 신경계를 흥분시키고, 성관계로 인한 흥분감이 더해지면 교감신경계의 흥분도는 엄청나게 증가해 뇌혈관계에 갑작스런 부담감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은 "음주 후 성행위와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일정부분 인정하더라도 A씨는 연장근무, 휴일근무를 반복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였던 만큼 이 역시 뇌출혈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의학적 견해는 음주 후 아내와 성관계 사실에만 주목해 A씨가 겪은 과로 및 스트레스를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뇌출혈은 업무공간에서 발생하거나 발병 직전 업무가 급증했을 때 일반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면서 "이번 판결은 성행위 후 곧장 발생했더라도 업무와의 연관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