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재개발에 밀려 본점과 합병.강남등 이전 러시

피맛골 맛집은 지금 이사중

“70년 전통잇자”일부는 인근서 새둥지 틀기도“

지난 수십년간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술꾼’의 속을 풀어준 서울 종로구 청진동과 피맛골에 이사 열풍이 불고 있다.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이 일대가 빌딩 숲으로 변하면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맛집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예 본점과 합병을 하거나 새 둥지를 틀어 강남까지 가는 집이 있는가 하면, 종로의 단골을 떠날 수 없어 근처로 이전하는 집도 있다.

이번에는 의금부길까지만 재개발이 진행돼 아직 서린낙지나 열차집 등 일부 가게는 살아남았지만 여기도 2009년 1월 6일 이후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오래 가진 못할 전망이다.

▶의금부길 쪽은 ‘합병, 이전’ 러시

=의금부길에 있던 오래된 맛집은 이미 지난 6월 거의 다 이전해 떠났다. 맛집이 떠난 자리에는 빈 건물이 저마다 ‘이전안내’ 게시판을 내걸고 오랜 단골에게 새 집을 찾아오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청진동 해장국의 원조 격인 청진옥은 지난 3일 71년간의 애환을 뒤로하고 르메이에르 종로타워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복 전 1937년부터 장사를 시작해 2대째 이어온 보금자리지만 재개발 열풍에 밀려 고층 빌딩 아래로 이전해 들어가는 것. 청진옥의 최준용(40) 사장은 “이제 피맛골은 무늬만 남아있을 뿐 그 안에서 살아 숨쉬던 식당은 모두 떠난 셈”이라며 “단골을 위해 근처인 르메이에르타워로 입주했지만 내 건물이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가게세도 내야 되고 힘들어졌다”며 하소연했다. 청진옥은 현재 이전하기 전 가게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철제 조명, 녹슬어 보이는 외관, 나무장식 등을 이용해 인테리어를 꾸며놓은 상태이며 양재동에 분점을 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 청진옥 근처 목포집은 안국동으로 이사한다.

70년 전통의 한일관은 종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낙지볶음, 소면, 해물파전 등 맛을 아는 사람 사이에서 ‘모든 메뉴가 기본 이상은 하는 집’이라 칭찬받던 이곳은 11월께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 근처에서 개업을 재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점심시간마다 돼지목살을 숭숭 썰어넣은 김치찌개로 직장인을 유혹하던 로타리소곱창집은 서대문에 있는 본점에 흡수합병됐다. 대신 근처 단골 손님을 위해 예전 그대로의 김치찌개를 인근 청운왕갈비집에서 대신 하기로 했다고 로타리소곱창집 주인은 귀띔했다.

▶의금부길 옆쪽 “아직은 장사 중”

=의금부길을 벗어난 곳에 있는 집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점심시간 푸짐한 반찬의 백반을 내주는 남원집, 무교동 맛을 그대로 이전한 서린낙지, 빈대떡 하나만으로도 피맛골 간판 맛집이라 불리는 열차집 등은 내년 1월 6일까지는 영업이 가능하다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틴다”고 말하고 있다.

남원집 임종오 사장은 “다른 장소로 가려니 가게세는 비싸고 권리금도 억단위를 넘어가 백반집 장사해서 옮길 수 있겠냐”며 “내년 1월 6일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땅한 장소나 좀 제공해주면 좋을 것을…. 유명한 맛집이 제 각각 옮겨가면서 이곳 가게의 존재감이 사라졌다”고 시청의 탁상행정을 비판했다.

열차집 우제은 사장 역시 “어디로 이전하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이곳의 분양가가 20억~30억이라 우리 같은 서민은 꿈도 못 꿀 수준”이라며 “갈 데는 마땅치 않고 결정된 건 없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잠이 다 안 온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