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한달에 수십만원씩 써서 영어학원에 가도 왜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안떨어지는 걸까? 외국인 강사들이 그 속사정을 털어놨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강사들의 첫인상

- 어떻게 한국에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하게 됐나?


Jamie(2년 차) 캐나다 출신으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곳에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친구들을 상대로 과외를 했다. 대학 친구가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에는 페이가 괜찮은 일거리도 많고, 한 번쯤 살아보면 좋을 재미있는 도시라고 설득했다.

Pierre(2년 차) 캐나다 출신으로 영문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다. 사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가 추천해서 2년 동안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한 일이다.

John(5년 차) 호주 시드니 출신으로 대학에서 심리통계학을 전공했다. 사실 통계학자라는 직업은 지루하고 나의 적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영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서 TESOL을 공부했다. 이후 아시아로 취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 한국 영어교육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Jamie 처음에는 서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거리를 찾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았는데, 공립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 강사에 지원했을 때 학교 관계자들이 너무 프로답지 않아서 많이 실망했다. 관리직에 있는 선생님들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외국인 강사를 상대하는 헤드헌터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헤드헌터는 선생님의 경력이나 수준보다는 오직 수수료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교육 환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Pierre 한국의 영어교육 시스템은 암기 우선이다. 외국인으로서는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암기보다는 이해를 우선으로 하고 많은 질문을 통해 언어를 연습하도록 한다. 서구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공부 방법을 소크라테스식 교육이라고 한다. 많이 암기할수록 잊어버리는 것도 많아진다.

John 왜 아이에게 암기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암기를 강요 받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What do you like?”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해도 아이들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한참 생각하다가 “I like computer game.”이라고 간단한 대답만 하고 만다. 사실 이런 상황은 비극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창의력을 저해하는 교육을 받는 한국의 아이들이 안됐다.

- 한국 사람들은 정말 많은 돈을 자녀의 영어교육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John 한국인은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 영어를 배워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도 모른 체 돈만 쏟아 붓는 것 같다. 4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단 한 명도 나에게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없다.

왜 영어를 배우냐고 거꾸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해서요”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나중에 외국인 친구와 교류할 수 있고 연애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외국에서 직업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영어를 공부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말해줘도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Jamie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사실 아이들을 바라보면 슬프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너무 공부만 강요 받는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거나 잠깐이라도 나갔다 온 아이들은 대화가 통해서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한국인 보조 강사가 없으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외국인 강사들은 점점 더 아이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50%만 이해해도 효과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많은 아이들이 그렇지 못하다. John 한국인 보조 강사가 있느냐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내 말을 아이들에게 통역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의 이목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킨다. 사실 아이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화를 내면 오히려 재미있어하지만 한국인 선생님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금방 조용해진다. 아이들 엄마와도 간접적으로 수업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 보조 강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원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강사를 고용한다고 들었다. 한국어로 아이들에게 문법 설명도 가능하고 부모님들과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생각인 것 같다.

Pierre 1주일에 두 번씩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해도(사실 영어 교실에서조차 95%는 한국말을 한다)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 외국에 가서 두 달 동안만이라도 하루 종일 영어만 쓴다면 아이들은 정말 빨리 영어를 배울 수 있다.

외국에서 외국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영어만 쓴다면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영어를 체득한다. 외국 연수가 비싸다고 하지만 한 달 학원비가 얼마인지 생각해봐라. 보통은 30만~50만원이고 강남의 영어 유치원은 한 달에 1백만~2백만원을 호가한다.

John 학원 진도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도 문제다. 한 반에는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내가 설명한 것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천천히 설명해줘야 하는데 시간 안에 진도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뒤처질 수 있다.

영어는 절대 두세 달 만에 늘지 않고,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학원에서는 1년 만에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광고하는데, 그런 것 자체가 허황된 생각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진도 스케줄이 더욱 빡빡하게 짜일 수밖에 없다.

Pierre 몇 가지 문제점만 개선하면 학원에서 더 나은 교육이 가능하다. 우선 커리큘럼을 정할 때는 외국인 강사와 상의해야 한다. 외국인 강사들은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 조직은 권위적이라서 우리의 생각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원어민 강사고 전문가인데 그들의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외국인 강사를 한국에 불러올 이유가 없다. 대부분 책 한 권을 쥐어주고는 그냥 들어가서 가르치라는 식이다.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바로 교실에서 강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에 대한 생각


- 한국의 아이들을 모국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John 많은 문제점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더 많기 때문에 4년 넘게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돈 때문에 한국에 온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외국인 강사들은 그들의 직업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에 머무른다. 호주 아이들은 절대 나에게 와서 안기거나 내 다리를 끌어안거나 하지 않는다. 백인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개인주의적이다.

강남 유치원 아이들은 그들이 부자인 줄 모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린아이들이 와서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정말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한국 아이들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좀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에서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선호한다.

Jamie 한국 아이들이 좀 더 놀도록 놔뒀으면 한다. 잘 찾아보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영어 프로그램이 많다. 시험이나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즐겁게 놀면서 영어와 친해지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라. 아이들은 즐겁게 대화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더 좋다. 열두 살 아이가 토플이나 IBT를 공부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많은 사람들이 발음 문제 때문에 외국인 강사를 선호한다. 발음이 영어를 사용할 때 정말 중요한가?

John 발음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발음이 좋으면 좀 더 듣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에게 엄마나 한국인 선생님이 부정확한 영어 발음을 이미 교육시켰기 때문에 R와 L, F와 P 등 어려운 발음을 교정하는 일이 조금 힘에 부친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외국인에게 파닉스 수업과 두려움 없이 대화하는 훈련을 받는 것은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중급 이상 수준이라면 수업의 70% 이상은 한국인 선생님들에게 좀 더 정교한 문법 수업을 듣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Jamie 미국 발음이 좋은지 영국 발음이 좋은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런 것은 거의 상관이 없다. 1주일에 몇 번 학원 오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국적 때문에 아이들의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거의 영향이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발음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지 어떤 스타일의 악센트를 쓰느냐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직간접적으로 한국 학부모들과 부딪혀야 하는데,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 방침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John 지금 강남의 영어 유치원에서 5~6세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남 학부모들은 엄살이 심하다.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모른다. 한 달에 1백만원씩이나 내는데 왜 우리 아이에게 질문을 안 하느냐고 항의하고, 어떤 때는 왜 우리 아이에게 질문을 했느냐고 항의한다. 정말 그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오늘 교실에서 한 아이의 팔을 잘랐어요”라고 말해도 강남 엄마들은 그 말을 믿을 것 같다. 강남 엄마들은 돈과 시간은 정말 많은데 정작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 같다. 그래서 강남과 분당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힘들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지만 돈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선생님을 더 존경하는 것 같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지역 아이들이 더 예의 바르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편이다.

Pierre 강남 아이들은 좀 더 터프해져야 한다. 기침만 해도 앰뷸런스가 올 지경이다. 어떤 아이들은 전혀 원칙이란 것이 없어 보인다. 강남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려고 한다.

Jamie 한국인 부모들과 공식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만 있고, 어른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게 아닐까? 캐나다에서는 일이 오후 6시면 끝나기 때문에 4~5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숙제도 봐주고 한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은 밤 11시가 넘도록 학원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은 아이들 성적이 좋으면 다인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 자격 없는 외국인 강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걱정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는가?

John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도 욕먹는다. 미국에서 2년제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원어민 강사도 봤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 졸업장과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국가의 여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자가 없는 강사들은 훨씬 싸게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학원에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Jamie 한국에 있는 외국인 선생님들 중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은 어쨌든 교육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원어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식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