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지난해 12월, 한 블로그에서 '무명가수의 기구한 삶'이라는 글을 읽게 됐다. 글의 주인공은 2번의 사기, 암에 걸린 어머니, 지인의 자살 등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은 무명가수로 소개됐다.


그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한 번 연락주세요"라는 짧은 댓글을 남겼다. 그리고 한달 반이 지났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가수 선우라고 합니다. 작년에 글을 올렸는데 댓글을 지금 확인했어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가능한가요?"


그렇게 인터뷰 날짜를 잡고 며칠 뒤 홍대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그는 상당히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나'라는 의구심을 가진 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강변 가요제부터 고난 시작…"기획사 사기, 동업자 배신에 눈물"

선우(31)의 첫 시련은 1998년 강변가요제였다.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예선참가를 위해 마산에서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서울에 도착한 순간 꿈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가요제의 예선심사 시간이 변경돼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심사위원도 떠나고 없었다. "황당했어요. 큰 매체니까 시간이 바뀔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첫 기회를 어이없이 날린 선우는 한 달여를 고심하고 짐을 싸 상경했다. 그는 낮에는 마트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피아노연습과 음악공부를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그는 한 기획사로부터 데뷔를 시켜주겠다는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세상물정 몰랐던 선우는 일본으로 프로듀서를 구하러 간다는 실장의 말에 어렵게 모았던 돈 500만원을 건넸다. 전형적인 기획사 사기였다. "어린나이에 충격이 컸죠.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기나 싶기도 하고요."


그 뒤 1년 반은 일만 했다. 개인사업을 하면 좀 더 여유롭게 음악 작업을 해야겠다는 일념에서였다. 덜 먹고 안쓰며 1,2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았다. 하지만 함께 살던 형에게 동업을 위해 돈을 맡겼다가 또 사기를 당했다.


멈추지 않는 시련…"암에 걸린 어머니, 아는 동생 자살 직접 목격"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선우는 단 하루도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결국 도피성 일본행을 선택했다. 어느덧 26살, 그는 일본의 한 가라오케에서 DJ를 하며 안정된 생활을 꾸려갔다. 그런데 이 때 또 한번의 비보가 날아왔다. 바로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가수하겠다고 스무살에 집을 떠나 그간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드렸던 죄송함이 밀려오며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앨범을 직접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차곡차곡 모았던 돈 800만원은 고스란히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갔다. "어머니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게 오히려 감사했어요."


27살, 다시 원점이었다.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꿈을 향해 달려야겠단 생각으로 라이브 카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30분씩하던 그의 공연시간은 점차 늘어갔고 그를 보러 오는 고정팬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노래를 좀 하게되면 데뷔를 시켜주겠다던 카페 사장은 차일피일 약속을 미뤘다.


29살이 되던 해에 그는 카페 문을 박차고 나왔다. 더 늦으면 영영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카페를 나온지 며칠 안돼 함께 방을 쓰던 동생이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전날 라면 한그릇하자며 전화가 왔었는데,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게 지금도 너무 후회스러워요."




11년 만의 감격 데뷔…뮤직비디오, 캠코더로 직접 제작 눈길


그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서 또 쓸쓸히 사라져간 동생을 위해 다시 한 번 꿈을 불 태웠다. 그는 일하는 틈틈이 작곡도 하고 가사도 쓰며 앨범 준비를 했다. 그렇게 1년 반 만에 선우는 앨범을 냈다.


그는 앨범 이야기를 하며 늦게나마 자신이 운이 트이는 것 같다고 했다. "원앙소리OST 를 만든 허훈감독님을 일하다 우연히 알게됐어요. 그 분 도움으로 녹음도 잘 마칠 수 있었죠." 이야기를 하다 말고 들고나온 앨범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를 보니 괜시리 마음이 찡해졌다.


선우는 뮤직비디오도 직접 만들었다는 말을 건넸다. "캠코더로 촬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요. 한번 보실래요?" 인터넷에 그가 올린 뮤직비디오( http://pann.nate.com/b200715364 )는 예상보다 훨씬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거 콘티짜고 연기하고 촬영도하고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었다.



투잡 아닌 '전업가수' 꿈, "노래하다 무대서 죽어도 좋아"

'구제 신인' 선우에게 앞으로도 계속 가수의 꿈을 이어나갈 건지 물었다. "당연하죠. 그만둘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거예요." 그는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가수가 되는 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전업가수'가 되는 게 최종목표라고 꿈을 이야기했다. 그는 많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무대에 매일 서고 싶다는 말을 하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대에서 노래부르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31살인 선우는 "언제부턴가 음악은 다 한줄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더 나이들면 가요무대를 목표로 하면 되니까요"라며 활짝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