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설날. 바쁜 일상에 쫓겨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도 같이 먹고 덕담을 나누는 자리다. 설날 차례상과 새배 손님맞이를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여러 가지 음식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한다. 예로부터 설날을 전후해 떡국, 만두, 각종 전유어, 식혜, 수정과, 세주 등을 먹는 풍습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2006년, 개띠 해 설날을 맞아 설음식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본다 .
 
'무병장수' 뜻 담긴 새해 첫 음식, 떡국
 설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음식은 바로 떡국이다. 설날 차례상은 ‘떡국 차례’ 라 하여 밥 대신 떡국을 올린다. 예로부터 설날 아침에는 모두 떡국을 먹는데, 왕실에서부터 양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흰 가래떡으로 만든 똑같은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정취지만, 1950년대만 해도 세모에 집집마다 떡메 소리가 골목을 매워서 즐거운 명절 부위기를 자아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왜 설날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었을까?
설날에 떡국을 끓이는 풍습은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의하면,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신생을 의미하는 종교적인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월 초하루에 길고 하얀 떡을 먹었던 것은 심신이 그릇된 욕심 없이 흰떡처럼 깨끗하고 때 묻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떡국을 먹는 것은 한 살을 더 먹는 다는 상징의 의미로 ‘첨세병(添歲餠)’이라 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나이를 물을 때 ‘몇 살이냐’라는 대신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느냐?’라고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떡가래 모양에도 각별하고 재미난 의미가 숨어있다. 먼저 시루에 찌는 떡을 길게 늘려 뽑는 것에는 재산이 쭉쭉 늘어나라는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둥근 모양이 엽전의 모양과 같아 새해를 맞아 금전이 충분히 공급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그런데, 개성지방에는 조롱박 모양의 조랭이 떡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전해내려 온다. 개성의 떡국 떡은 누에고치처럼 가운데 부분을 대나무 칼로 비틀어 잘록하게 만든 것으로 조랭이떡이라 한다. 일설에는 누에가 길함을 뜻하기 때문에 누에고치 모양으로 빚었다고도 한다. 조랭이 떡국에는 또 다른 의미도 담겨 있다. 하나는 고려의 신하가 변절해 지조없이 조선의 신하가 된 것을 빗대어 풍자하는 것으로 당대 현실을 조롱떡에 담아 비꼬았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설빔에 조롱박을 달고 다니면 액막이를 한다는 속설을 적용해 조롱떡국을 끓여 먹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떡국에서 ‘꿩 대신 닭’이 유래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설날의 흰떡은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쫄깃쫄깃하게 되도록 메로 쳐서 가래떡을 만든다. 떡 메치는 정겨운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방앗간에서 기계로 가래떡을 빼거나 아예 떡집이나 마트에서 떡국용 떡을 살 수 있어 편하다.
떡국은 실용적인 기능도 있다. 정초부터 여러 가지 음식으로 부산하게 상을 차리는 대신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떡국상을 차리면 그만큼 부엌일이 부담이 줄어든다. 떡국용 가래떡은 너무 물렁해도, 너무 딱딱해도 썰기 힘들다. 가래떡을 뺀 지 하루 정도 지나 썰면 알맞다. 가래떡이 적당히 굳으면 약간 길쭉한 타원형으로 어슷하게 썰어 준다. 이때 지나치게 얇으면 떡국을 끓이면서 쉽게 퍼져버려 떡 특유의 쫀득한 맛을 살릴 수 없으므로 4mm정도 두께가 알맞다.
떡국에서 유래된 재미난 속담도 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떡국은 흰떡과 쇠고기, 꿩고기가 쓰였으나, 꿩을 구하기가 힘들면 대신 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바로 ‘꿩 대신 닭’ 이라는 말이 비롯됐다고 한다.
 
요즘은 주로 떡국용 육수로 쇠고기를 많이 쓴다. 떡국은 국물이 맛있어야 하는데, 보통 소의 사골이나 양지머리, 사태 등을 오래 고아서 국물로 사용한다. 사골 국물과 쇠고기 국물을 반반씩 섞어 사용해도 맛이 좋다.
떡국 끓일 때는 고기장국을 미리 끓여 두어야 한다. 국물이 맛있게 우러나는 양지머리는 고아서 덩어리는 편육으로 이용하면 좋다. 양념한 장국을 끓이다가 준비한 흰떡을 냉수에 씻어서 넣고, 한소끔 끓으면 떡이 떠오른다. 이 때 그릇에 떡국을 담고 웃기를 얹어 낸다. 웃기는 쇠고기 살코기를 다져 볶은 것과 황백지단을 쓴다. 혹은 살코기와 움파를 꼬치에 꿰어 만든 산적을 한 두 꼬치 얹기도 한다.
 
 
만두는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
 
 
설날 아침에 개성지방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끓이고, 충청도지방에서는 생떡국, 이북지방에서는 만둣국을 끓이기도 한다. 특히 평안도나 황해도, 강원도 출신 사람들은 설날에 떡국보다 만둣국을 즐겨 먹었다.
떡국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음식이라면 만둣국은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1년 내내 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면서 먹는 음식이다. 원래 만둣국과 떡국은 따로 끓여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점차 두 가지를 함께 끓여 먹기 시작했다.
이밖에 설날에는 육류, 어패류, 채소류 등 여러 재료를 이용해 전유어를 준비한다. 고기전으로 살코기, 간, 천엽을 많이 쓰고, 생선전은 대구, 동태, 새우 등을 쓰고, 채소류전은 빈대떡, 화양적, 느름적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설날 전통 후식으로 수정과와 식혜도 빼놓을 수 없다. 수정과와 식혜에서도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수정과 주원료는 생강과 계피인데, 생강과 계피의 성질이 뜨거워서 추운 바깥에 나가기 전에 마시면 몸을 훈훈하게 데우는 데 아주 그만이다. 식혜는 엿기름으로 만든 전통음료다. 엿기름이란 한약명으로 ‘맥아’라고 하며 쌀, 밀가루, 과일 등의 적취(한방에서, 오랜 체증으로 말미암아 배 속에 덩어리가 생기는 병을 이르는 말)를 해소하는 효능을 가졌다. 흥겨운 설날 분위기와 넘쳐나는 설음식의 유혹에 못 이겨 과식했을 때는 식혜로 입가심을 하면 속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이제 설음식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보았으니 올해 설날에는 떡국과 만둣국 한 그릇도 그 맛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날만큼은 손수 정성스레 만든 설음식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게 좋을 듯싶다. 가족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우리네 전통 설음식으로 차린 설날 상차림이 바로 몸과 마음까지 살찌우는 ‘웰빙밥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