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사납금 압박에 승차거부 유혹

심야시간대 손님 골라 태우기 "과거보다 나아져"..승차후 목적지 말해야

"사납금을 채우려면 저녁 한때 '피크 타임'에 영업을 잘해야 하는데, 이때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고 싶은 유혹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13년째 법인 택시를 운전하는 김한태(53. 가명) 씨는 승차거부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히면서 "예전엔 많았지만, 그래도 요즘 택시기사들은 웬만하면 승차 거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손님들은 신고 정신이 투철해 승차를 거부당하면 바로 다산콜센터(120번)로 신고하는데,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택시 기사는 1주일 안에 회사 직원과 함께 센터를 방문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

승차거부로 인정되면 과태료 20만 원을 내야하고 소속 회사도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1년 안에 재발할 때엔 벌금이 50% 가산돼 30만 원으로 오른다.

웬만한 배짱을 가진 택시기사가 아니라면 벌금과 회사로부터 받을 질책을 감수하면서까지 승차거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도 매일 자정을 전후한 시간,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택시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승차거부를 하며 손님을 골라 태우는 택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씨는 "저녁 '피크 타임'에 강남역이나 종로, 신촌을 지날 때면 '돈 되는 손님'을 골라 태우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문제는 사납금"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법인 택시 기사는 한 달에 26일을 일한다. 13일은 오전조, 13일은 오후조로 편성돼 하루 12시간씩 운행한다. 부지런히 일하면 식사.세차 시간 등을 빼고 10시간~10시간30분 정도를 일한다. 회사에 매일 내야 하는 사납금은 오전조일 때 10만 2천 원, 오후조일 때 11만 2천 원이다. 사납금을 꽉 채워 내면 월급 102만 원이 나온다. 오전조일 땐 손님이 없어 사납금을 채우기 벅차다.

"터미널, 지하철역 앞에서 30~40분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차에 탄 손님이 기본요금 거리를 가자고 하면 솔직히 김 빠집니다"

저녁조일 때, 오전조 근무 때 모자라는 액수를 채우고 최대한 많이 벌어서 남겨야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오후 11시~새벽 1시 사이, 저녁식사와 2차 술자리를 마친 직장인.대학생들이 귀가하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 기사들에게는 '황금시간'이다.

낮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택시보다 손님 숫자가 훨씬 많아진다. 이 '황금시간대'에 택시들은 '돈 되는' 손님을 모시고 싶다.

돈이 되는 손님은 주로 성남, 수원, 안양, 의정부 등 시외로 나가거나 다른 손님을 태울 수 있는 번화한 지역을 목적지로 하는 사람들이다.

종로와 강남역, 신촌, 홍대 앞 등 번화가에는 자정을 전후해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도로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택시를 부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시간 때 승차거부와 신호위반 등을 해가며 무리하게 영업하는 택시들이 있다.

김씨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만 살짝 내린 채 손님을 골라태우는 택시도 있다. 이런 택시는 발견 즉시 120에 신고해야 한다. 이런 일부 택시들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기사들까지 싸잡아서 욕먹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손님들과 얘기하다 보면, '기사님이 싫어할까 봐 미안해서 차 밖에서 목적지를 말하게 된다'고들 하는데, 그러면 나는 손님에게 '일단 타시고 목적지를 말하세요. 그때 안 간다고 내리라고 하면 승차거부입니다'라고 충고합니다. 그렇게 해야 손님들이 대우받습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