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얼굴없는 천사는 결국 나타났다

"따르르릉~~~"

28일 오전 11시 55분,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노송동사무소 맞습니까? 동사무소 옆 세탁소 자판기 아래에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십시오." 일주일여를 기다리던 그 전화였다. 동장과 직원 4명이 모두 달려나갔다. 박스는 덩그러니 놓여있었지만 천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없는 천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성탄절까지 나타나지 않자 그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올해는 쉬어가려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천사는 조금 늦은 것 뿐이었다. 주민센터 화단에다 매년 박스를 두고간 이름없는 기부가는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올해는 주민센터의 옆건물까지만 조심스레 방문했다.

박스 안에는 5만원과 1만원권 지폐뭉치 8000만원과 돼지 저금통 속의 동전 26만 5920원이 들어있었다. 글귀가 적힌 종이도 발견됐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하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어느해보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2009년이었지만 그의 성금은 가장 큰 금액으로 늘어났다. 10년간 11차례나 이어진 '얼굴없는 산타'의 성금은 이제 총 1억 6136만 3120원이다.

수화기 너머로 신분을 물어보려 했지만 얼굴없는 산타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다만 전화를 받은 주민센터직원은 "40대 남성의 목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한일수 동장은 "예전에도 30일에 성금이 도착한 적이 있어서 주민센터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불우이웃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맞을 수 있도록 이 돈을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이 돈은 지역의 불우이웃 수백여 가정에 조금씩 전달될 예정이다. 노송동은 전주의 구시가지 지역이며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이 많이 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