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부자 아빠 아니라서 미안해"…뉴욕 한인 자살 급증

지난 2월 25일 새벽 뉴욕 퀸즈 지역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국인 부부가 숨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조사 끝에 자살을 위한 방화였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부부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은 건 '빚'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자살이 급증하는 현상을 분석하며 이들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을 소개했다.

사망한 김용호(52)ㆍ김순희(45) 부부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네일 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부는 살롱과 아파트의 임대료가 밀려 집주인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있었고, 자가용마저 압류당하면서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사건 당일 새벽 이들 부부는 20살 딸에게 전하는 메모를 아파트 문 밖에 남겨둔 채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 씨의 매부 박치근 씨는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다"고 말했다.

자살자 2배 늘어…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

<뉴욕타임스>는 뉴욕 주민들의 출신 국적에 상관없이 경기 침체에 따른 고통이 널리 펴져 있지만, 그로 인한 희생이 특히 한인들 사이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한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 사이에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뉴욕 주재 한국 총영사관은 올해 한인 자살자의 수가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15명이라고 밝혔다. 작년에는 6명, 재작년에는 5명이었다. 올해 자살자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경근 총영사는 한국 국적자들의 실제 자살 수치는 파악된 것보다 두 배 이상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주에서 발행되는 <한국일보>는 지난 9월 올해 뉴욕 지역에서 자살한 한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이 최소 36명이라고 보도했다.

뉴욕 주재 한국 관리들과 한인 사회의 리더들은 이 같은 추세를 놀라워하면서, 자살 급증의 주된 이유는 '돈 문제'라고 말한다.

'뉴욕차일드센터' 산하 아시안 클리닉의 윤성민 부실장은 많은 한인들이 학업과 직업에서의 성취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인들은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면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윤 부실장은 "한국인들의 사고가 너무 경직됐다"고 말했다.

한인 자살 급증 현상은 뉴욕시 전체의 자살자가 줄어들고 있는 사실로 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 뉴욕에서는 올 1월부터 10월까지 339명이 자살해 월평균 34명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월평균 39명, 재작년 39.4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한국 추세와 유사

<뉴욕타임스>는 한인들의 자살이 느는 것은 한국 내에서의 자살이 증가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2006년 21.8명, 2007년 24.8명, 2008년 2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6년 통계를 기준으로 한국이 OECD 30개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이번 달 보고했다. 올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톱 모델 김다울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국에서 자살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농촌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가족 기반 체계와 낡은 가치 체계가 힘을 잃고 세속적인 가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최근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에게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0년 전 미국으로 이주해 온 윤성민 부실장은 "(미국 내 한인들은) '미국'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 하지만, 여전히 더 높은 성취에의 가치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이원조(36) 씨는 지난 9월 6일 퀸즈 베이사이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미주 <한국일보>는 이 씨가 당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당시 해고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7일에는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경호(55) 씨가 퀸즈 프레시메도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방화 자살했다. <한국일보>는 그가 당시 동거인과 헤어진 상태였으며 끊임없이 돈 문제로 고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9월 11일에는 한국계 미국인 김충식 씨가 뉴저지의 데마레스트에 있는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뉴저지 내 10곳의 옷가게를 소유한 사업가였던 김 씨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아내와 세 아이를 남기고 떠났다고 미주 <중앙일보>가 전했다.

'부자 아빠 아니라 미안해'

<뉴욕타임즈>는 뉴욕 내 한인 사회에서 김용호 씨 부부의 자살만큼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준 죽음도 없었다고 전했다.

1990년 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들 부부는 편의점 등에서 일하다가 몇 년 후 네일 살롱을 열었지만 사업이 신통치 않았다고 매부 박치근 씨는 전했다.

그러다가 약 2년 전부터 부부는 채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박치근 씨는 "그들은 조용히 고통을 겪었다"며 "형제 한 명으로부터 소규모 대출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 부부는 가족 중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생을 마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김 씨가 좀처럼 남에게 자기 얘기를 안 했다고 말했다.

김용호 씨는 딸에게 편지 한 통과 40달러(약 4만6000원)의 현금을 남겼다. 편지에는 "사랑해 우리 딸. 너 혼자 두고 가서 너무 미안해. 네가 부자 아빠에게서 태어났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라고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