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울릉도 내수전 트레킹 코스를 이야기 하기 전에 울릉도 길 개척사를 짚어야겠다. 그래야 이해가 빠르다. 울릉도 길은 시쳇말로 길이 아니다. 내륙길은 이리저리 구불텅구불텅이다. 200~300도로 모질고 강퍅하게 휘었다. 경사도가 30~40도의 고갯길도 흔하다. 울릉도에선 토박이 아니면 운전하기 두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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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험한 것은 섬 전체가 하나의 바위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보면 4면 모두 깎아지른 기암이다. 어느 한 구석도 만만하지 않다. 벽마다 날카롭게 각이 졌다. 험하고 아찔하다. 이러다보니 길 뚫기가 쉽지 않다. 하여, 울릉도 주민의 숙원사업인 해안일주도로(지방도 926호)는 1963년 공사를 시작했지만 한 세대를 훌쩍 넘긴 지금도 완공되지 않았다. 총 길이는 고작 44.2㎞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섬말에서 내수전을 잇는 4.4㎞가 남아 있다.

아직 뚫리지 못한 이 구간에 산길이 하나 있다. 내수전 트레킹 코스다. 과거 천부 주민들이 도동으로 넘어올 때 다니던 길이다. 토박이들 중에는 이 길을 울릉도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꼽는 사람이 많다.

내수전 전망대 앞길이 출발 지점이다. 출발 지점부터 전망이 좋다. 전망대 앞에 떠있는 섬이 죽도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고 한다지만 정작 생김새는 마라도를 닮았다. 두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군청이 관광 코스로 개발, 유람선도 들어간다.

길은 의외로 평탄했다. 길 아래 벼랑은 경사 70도 정도. 위험 표지판은 붙어있지만 여기가 정말 절벽길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엔 완만한 내리막, 나중엔 완만한 오르막이다.

숲은 밀림이다. 관목과 잡초가 빼곡하다.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나무 생김새도 희한하다. 앙코르유적 타프롬 사원을 감싸고 있는 펑트리, 열대우림지역의 반얀트리처럼 뿌리가 툭 튀어나와 이리저리 꼬였다. 척박한 바위를 뚫지 못하니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벼랑 경사면엔 고사리 천지. 생태계가 그만큼 잘 보존됐다는 의미다. 햇살이 비출 만한 틈엔 애기똥풀, 섬초롱 등 야생화도 많이 피었다. 척박하고 모진 환경에서 햇살 한 줄기 이슬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고 자란다.

산길은 낮에도 어둑어둑하다. 트레커 아니면 찾는 사람이 없다.

중간쯤 정매화곡이란 쉼터가 있다.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던 터다. 울릉도의 지명 중엔 이렇게 주민들의 이름이 지명이 된 것들이 있다. 내수전은 김내수란 사람이 살던 땅이라고 한다. 이 터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사람은 이효영. 19년간 살다 81년에 이사갔다. 이씨 부부는 이곳에 살면서 겨울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던 폭설에 갇힌 조난자 300명을 구조했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보이면 숲 끝자락이다. 숲길을 벗어나면 석포다. 석포는 일출전망대다. 이 마을에 한 젊은이가 살았는데 독도를 보며 꿈을 키웠다. 그는 몇 해 전 발해의 해상경로를 탐사한다며 뗏목을 타고 난바다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안 보인다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여. 볕 좋은 날은 죽도 뒤에 독도가 빤히 보여. 불 밝힌 오징어배도 일품이오.”

길도 때로는 잊혀진다. 한때는 주민들이 넘나들던 내수전길도 이제는 눈 밝은 트레커만 찾고 있다. 고단했던 울릉도 사람들이 눈물깨나 뿌렸던 오솔길은 벌써 원시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