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5만원권 인물 밀실선정 논란
한국은행의 고액권 인물 선정 작업이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이 초상인물 후보 압축작업에 들어간 가운데 여론수렴 과정에서 높은 지지를 받은 광개토대왕, 단군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광범위한 여론수렴을 공언했으나 하나마나 한 수준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일반 국민의 다양한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몇몇 한은 관계자와 자문위원이 비밀회의(?)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자문위원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후보인물의 공적과 행적 등 검증작업을 광범위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하나마나 한 여론수렴
= 한은은 당초 2주간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뒤 10명 후보 외에 다수 지지를 얻는 인물도 최종 검토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최종후보 선정에서는 기존 10명을 대상으로만 검토했고, 광개토대왕 단군 등 일반 국민에게서 많은 추천을 받았던 후보들은 모두 제외했다.
여론수렴 과정이 요식행위에 그쳤고 결국 '한은이 정한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한은과 주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여론조사 과정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던 광개토대왕 단군 등이 제외된 것에 대한 항의성 글이 잇따르고 있다.
아이디 wittyman을 쓰는 네티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광개토대왕을 제외한다면 여론수렴을 뭐하러 했는지 모르겠다"며 "하나마나 한 여론조사"라고 혹평했다. 다른 네티즌도 "한은이 내부적으로 김구와 신사임당을 정해 놓고 결국 다른 인물들은 들러리 세운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초상인물 후보군이 너무 뻔한 인물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매일경제의 고액권 인물 초상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경제계 인사는 "기업인 등 경제계 인사를 포함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 초상인물 선정 처음부터 다시 해야
=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발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데 한은은 아직도 '안전운행' 위주로 인물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번 초상인물 선정과 여론수렴 과정은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매경 설문조사에 참여했던 한 문화계 인사는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기존 화폐 인물도 모두 교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화폐 발행을 늦추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초상인물 선정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자문위원 명단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은이 각 후보 지지단체의 로비 등을 염려해 자문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결국 선정과정에서 각종 로비와 세몰이를 막지 못했다"며 "화폐 인물의 역사적 업적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있어야 하는데 자문위원 다수를 차지하는 역사학자들이 과연 제대로 검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검증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문위원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구를 비롯해 다른 후보들 검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 기존 화폐까지 인물 전면 개편을
= 새로 발행된 1만원권과 5000원ㆍ1000원권에 대해 불만이 팽배하다. 한은은 두 지폐를 기존 지폐 인물은 그대로 두고, 뒷배경 일부와 크기를 축소했다. 한마디로 미봉책이라는 게 일반국민들 반응이다. 한 기업인은 "한국은행이 여론 반발을 염려해 미세조정으로 지폐를 발행하다 보니 새 지폐다운 지폐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고액권 인물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재 방식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19일 "자문위에서 조만간 4~5명선으로 후보군을 압축해 한은에 최종 보고해 올 예정"이라며 "한은에서는 정부와 협의를 거쳐 조만간 이들 가운데 2명을 고액권 초상인물로 선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자문위가 선정할 4명 후보군에는 김구와 신사임당이 포함될 것이 유력하고 또 다른 여성 인물인 유관순은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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