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사랑

찬 공기를 뚫고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새해 희망을 꿈꾸는 것은 동양만의 문화는 아니다.

부유한 서구인들은 수백만원을 들여 해가 먼저 뜨는 곳, 멋진 휴양지를 찾아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곳들은 이런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를 둘러싸고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이 8년 전 숨막히는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른바 ‘밀레니엄 해돋이’ 전쟁이다.

가장 먼저 하루가 시작되는 날짜 변경선에 걸쳐있는 육지는 사실 시베리아 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섬나라들이다. 환상적인 경치로 유명한 피지,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뉴질랜드, 럭비강국 통가와 함께 우리에게 다소 낯선 키리바시라는 작은 섬나라가 경쟁자들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이라며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2000년. 그 2000년 새해 첫날 가장 먼저 뜨는 해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었겠는가.

통상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것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피지가 뒤통수를 맞은 것은 1995년 태평양의 키리바시의 대통령선거 때부터였다. 당시 선거에 나선 티토 대통령 후보가 키리바시 전체를 같은 시간대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려면 키리바시라는 나라를 먼저 알아야 한다.

키리바시는 인종이 주로 미크로네시아인이며 33개의 섬 중 20개의 섬에 80여만명이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1788년 영국 해군에 의해 발견된 후 영국과 일본에 점령되었다가 1979년 독립했다.

동서로 가장 먼 섬이 3900km나 떨어져 있어 하와이나 호주에서도 수천마일이나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다. 이러다 보니 나라 한가운데로 날짜변경선은 물론 적도까지 걸쳐 있다.

문제가 된 곳은 키리바시의 캐롤라인 섬. 키리바시에서도 동쪽에 있는 캐롤라인은 원래 날짜 변경선 오른쪽에 있어 오히려 하루가 늦은 곳이었다. 그러나 티토 대통령은 1995년 키리바시 전체를 같은 시간대로 통일한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뉴질랜드, 피지, 통가 등 주변국들이 들고 일어났다. 몇년 뒤면 새 천년 아침을 맞기 위해 몰려들 엄청난 관광객을 눈 뻔히 뜨고, 키리바시에 빼앗기게 됐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피트 섬이 특히 억울해 했다. 그러나 운명은 키리바시 편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1996년 그리니치천문대는 "어떤 시간대를 적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각 나라의 고유한 권리"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키리바시라는 생소한 작은 나라는 지구촌의 유명 국가가 됐고 결국 키리바시는 2000년은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하루가 시작되는 섬’으로 공인되게 됐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은 물론 독도다. 내륙에서는 경북 구룡포읍 석병리가 최동단(最東段)이라는 것이 국립지리원의 설명이다.